자부선사께서 삼청궁(三淸宮)에다 전수의 전당을 마련하고 이에 네 사람의 제자를 길러 내셨으니 곧 공공(共工), 대요, 헌헌(軒軒), 창힐(倉詰) 등이시다. 그러나 우리의 기학(奇學)을 가리켜 그 창시자를 말하라면 이상에서 지적한 네 사람의 인물 가운데 직접적인 전맥자는 없다.

그러나 기문은 역시 자부선사(紫府仙師)시대에 창제되었으니 반고천황(盤固天皇)이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반고천황은 분명히 우도 창시의 효시는 될 수 있어도 우도 창제의 학문적인 기틀은 마련하지 못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수록된 반고천황(盤固天皇)에 관한 기록을 보면 반고천황(盤固天皇)이 환인 천제(天帝)로부터 통치권역을 분할 받고서 세 사람의 추종자와 함께 육정(六丁) 육갑 신장을 거느리고 기술을 부리면서 삼위산(三危山)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말하는 『육정 육갑을 거느리고 기술을 부리면서 삼위산(三危山)으로 들어갔다』라고 기록한 부분에 관해서다.

간지문자(干支文字)는 본시 제의문자(祭儀文字)로 제정된 것이다.
제의문자(祭儀文字)란? 하늘에 제사를 거행할 때 천신(天神)의 계시를 받아 기록하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문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육정(六丁) 육갑(六甲)의 간지문자는 모두가 신장(神將)인 고로 반고(盤固)가 부렸다는 기술은 분명히 우도의 수련에서 얻어진 고도의 둔갑술(遁甲術)과 장신법(藏身法)을 일컫는 말인 것이다.

또한 반고천황(盤固天皇)은 육정(六丁) 육갑(六甲)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초인적인 영력을 지닌 분이며 또한 기술(奇術)이라는 말은 기문둔갑(奇門遁甲)술을 말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우도(右道) 수련에 통달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혹자는 기술이라는 말의 뜻을 술법쯤으로만 해석하는 예도 있지만 그러나 기술이 분명한 기문둔갑(奇門遁甲)술이라는 사실은 육정(六丁) 육갑(六甲) 신장(神將)이라는 말로서 충분한 뒷받침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육정(六丁) 육갑(六甲) 신장(神將)을 거느리고 기술을 부리면서 삼위산(三危山)으로 갔다는 그 기술은 기문둔갑(奇門遁甲)술이 아니고는 달리 해석이 되질 않는다.

이러한 이론을 확실하게 증명해 줄 수 있는 전고(典考)가 있다. 그것은 『중국인의 신화』라는 책에서 둔갑의 화신으로 잘 나타나 있는데 그 내용은 반고(盤固)에 관한 이야기로서 그곳에서도 반고(盤固)가 둔갑(遁甲)의 과정을 거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볼 수가 있다.

어느 나라의 왕후가 오랫동안 귓병을 앓아 왔는데 마침내 황금 색깔의 귀여운 누에가 나왔다. 그런데 이 황금 누에가 차차 자라더니 급기야 황금 강아지로 변하고 황금 강아지는 차차 자라서 적장의 목을 따오는 큰공을 세우고 나서 다시금 인신(人身) 견수(犬首)의 반(半) 인간이 되는 둔갑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지나인(支那人)들이 무어라 하든 상관없이 상고시대에 우리 겨레의 방계조상(傍系祖上)임에는 틀림없다.

좌도방(左道坊)의 창시는 삼청궁(三淸宮)의 네 제자중 대요에 의해 학통의 체계가 완성되었고 그 뒤 고구려 고국천왕조(故國川王朝)(재위 179∼197)에 재상을 지낸 을파소(乙巴素) 선사께서는 『청구기문(靑邱奇門) 좌우(左右) 총방(叢方)』이라는 문파를 창설하였고 뒤이어 부설 교육기관으로서는 『태청궁(太淸宮) 청구(靑邱) 태학당(太學堂)』을 세워 준재(俊才)를 불러모아 심신을 수련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곧 본방(本坊)의 창립 유래인 동시에 연원사(淵源史)다.

기실(其實) 반고천황(盤固天皇)이 우도(右道) 기문의 창시자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혁상의 기록일 뿐이고 사학의 연원사(淵源史)와 연결 지어서 얘기하기는 조급 미흡한 감이 있다.

그러므로 사학의 연원은 을파소(乙巴素) 선사(仙師)께서 실제로 문파(門派)를 창설하신 그 연도부터 시원(始源)으로 삼는 것이 타당할 것 같고 또한 본방의 창문 연대를 기록적으로 밝히자면 고국천왕(故國川王)이 아직 재위 중이던 시기를 소급해서 기원 190년대부터 기산(起算)을 한다면 적어도 1800년 이상의 긴 역사가 곧 사문의 연원사임을 알 수가 있겠다. 그러나 나라가 몰락됨에 따라 본방(本坊)의 명운(命運)도 비탈길을 걷기 시작하여 끝내는 본거지를 떠나 심산(深山)궁곡 명산의 구지동부(九支洞府)를 찾아 전전하면서 그 잔맥(殘脈)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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