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자부진인(紫府眞人)(단군왕조의 후손)께서는 태백선원(太白仙園)의 삼청궁(三淸宮)에다 공공(共工), 헌원(軒轅), 창힐(倉詰), 대효등의 문도를 모아놓고 동방은서(東邦隱書)를 전수하니 이는 영생오겁지종(靈生五劫之宗)이요 선천미판지시(先天未判之時)부터 있어온 자부비문(紫府秘文)으로서 곧 중생을 구제하는 유일한 후천 연명술(延命術)인 것이다.

그후 대효와 창힐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청구기문의 맥은 마침내 고구려조에 이르러 낙성(樂聖) 을파소(乙巴素) 선사께서 청구기문(靑邱奇門) 좌우총방(左右總坊)이라는 도방을 개설하시고 자부비문(紫府秘文)의 내용을 연해한 홍연정결(洪煙正決)을 편찬하시게 된 것이다. 시중의 홍연진결과 홍연비결은 홍연정결의 가본이다.

헌원(軒轅)은 중국기문의 창시자로서 풍후(風后), 태공(太公), 황석공(黃石公), 장자방(張子房)등의 역대 중흥의 도조(道組)들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 기문의 맥락을 있게 한 분들이시다.

청구기문은 팔간산(八艮山)에 뿌리를 둔 선문화(仙文化)의 일맥으로서 백두산민족 고유의 간지문화권(干支文化圈)을 형성시킨 대표적 문화양식인 것이며 따라서 그 창학의 동기 또한 순수하여 어디까지나 심신수련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기문에서 말하는 우도(右道) 기문(축지법)인 것이다.

중국기문은 그 창학적 동기가 자못 공리적(公利的)이었으니 그 의도와 목적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 책의 일환이 되었다. 사실 헌원(軒轅)은 불가항력적인 치우(蚩尤)와의 전쟁을 기문병법으로서 만이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청구기문이든 중국기문이든 사학의 궁극적인 창학 목적은 위로는 나라를 보호하고 아래로는 인간의 삶을 보존하게 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시년국(天時年局)으로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책하고 인사명국(人事命局)으로서는 보명(保命), 호신(護身)을 결하니 이로서 사학은 후천(後天)의 연명지책(延命之策)으로서 중요한 비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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